무한/독서

[발췌] 공정하다는 착각

Mu Han 2025. 1. 26. 21:18


운의 윤리는 인간의 이해와 통제력을 벗어나는 삶의 차원을 중시한다. 세상이 반드시 각자의 능력에 맞는 보상을 주지는 않기 때문에, 인생에는 신비, 비극,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요즘 우리는 성공을 청교도들이 구원을 바라보던 방식과 비슷하게 본다. 행운이나 은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얻은 성과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이다.
우리 자신을 자주성가하고 자기충족적인 존재로 여길수록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힘들어진다. 내 성공이 순전히 내 덕이라면 그들의 실패도 순전히 그들탓이 아니겠는가. 이 논리는 능력주의가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논리로 가능한다.

대학 학력의 무기화, 그것은 능력주의가 얼마나 폭정을 자행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세계화 시대는 노동계급에게 큰 폭의 불평등 확대로, 또한 임금의 정체를 안겨주었다.

성공의 길에 놓인 장애물을 모두 제거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성공 기회를 가질수 있다는 것, 인종이나 출신 계층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기 재능과 노력이 허락하는 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회가 정말로 평등하다면 꼭대기에 선 사람은 그 성공과 관련된 보상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 이것이 능력주의의 약속이었다.

토머스 프랭크는 뉴딜 정책을 만든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배경을 가졌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루스벨트가 가장 신임하던 해리 홉킨스는 아이오와 주의 사회복지사였다. 법무장관을 거쳐 대법원 판사에 임명된 로버트 잭슨은 법학 학위가 없는 변호사였다. 루스벨트의 구제금융 정책을 추진한 제시 존스는 텍스사 주의 사업가였는데 유수 금융기관의 관리자가 되는 데 아무 주저가 없었다. 루스벨트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사장에 선임한 메리너 에클스는 유타주의 작은 마을의 은행원이었고 비대졸자였다. 아마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무장관일 헨리 윌리스는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학업을 마쳤다.

내가 부자라고 할 때, 나는 나의 부와 특권을 내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사회를 선호할 수 있다. 그러면 귀족제 사회가 정답일 것이다. 내가 가난하다면 나 자신 또는 내 자손들이 사회적 상승의 기회를 갖는 사회를 선호할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살펴보면 두 경우 모두 정반대로 생각할 점이 있음을 알게된다. 부 또는 가난은 각각의 사회적 지위와 자부심을 상징한다는 점 말이다. 귀족정 체제에서 상류계급 짐안에 태어났다면 자신의 특권이 큰 행운임을(스스로의 성취가 아니라) 인식할 것이다. 한편 능력주의가 허용하는 최정상까지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으로 치고 올라갔다면 자신의 성공은 물려받은게 아니라 쟁취한 것임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귀족적 특권과 달리 능력주의적 성공은 스스로의 자리를 스스로 얻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런 관점에서 부자가 된다면 귀족제에서보다 능력주의 체제에서가 더 낫다.
비슷한 이유로 능력주의 사회에서 가난하다면 맥이 빠지는 일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불우함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스스로의 탓이라고 위로 올라가기 위한 재능과 야심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이런저런 재능을 갖게 된 것은 내 노력이 아니라 행운의 결과다.
내가 재능을 후하게 보상하는 사회에 산다면 그것 역시 우연이며 내 능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재능과 천분이 누군가에게 빚진 것이라면(유전이든, 우연의 결과이든, 신의 선물이든) 우리가 거기서 비롯된 혜택을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 하는 것은 실수이자 자만일 것이다.

이는 압도적 다수(77%)의 미국인이 현실에 펼처진 사회적 상승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나 스스로도 나의 하버드 대학생들에게서 그런 과장된 인식을 본다. 그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재능과 (대개의 경우) 유복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자신은 노력과 수고 덕분에 하버드에 입학했다고 입을 모은다.
능력주의의 이상이 재능의 우연성을 외면함으로써, 또한 노력의 중요성을 과장함으로써 도덕적 흠을 갖는다면 과연 다른 어떤 점의 개념이 대안일 수 있는지는 따져볼 때다. 그리고 그런 개념에서는 어떤 식으로 자격 문제에 접근하는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데 성공하려면 생득적 지능은 큰 관건이 아니다. 어느 정도 관건이 되기는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오늘날의 학력주의적, 전문직업인 위주 계층은 그들의 특권을 떻게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지 감을 잡고 있다. 그것은 자녀들에게 막대한 재산을 상속해 주는 방법이 아닌 능력주의적 사회에서 성공을 결정하는 입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고등교육은 그 영예의 대부부을 그것이 공언한 고등 목표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삭생들이 직업 세계에서 필요한 역량을 갖추게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도덕적인 인간이자 민주적인 시민으로서 공동선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사람이게끔 준비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을 가르쳐온 나는 도덕교육 및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확신하고 있다.

패자에 관대하지 않고 승자에게 압제적임으로써 능력주의는 폭군이 되었다.
'삶의 작은 영역에서는 운수가 좌우할 수 도 있다'

서로 다른 삶의 영역에서 온 시민들이 서로 공동의 공간과 공공장소에서 만날 것을 요구한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다른 의견에 관해 타협하며 우리의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공동선을 기르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시장이 각자의 재능에 따른 뭐든 주는 대로 받을 자격이 있다'는 능력주의적 신념은 연대를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든다.

사회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록된다.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깅 서 있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능력주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 마이클 샌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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