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독서 245

[발췌]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나는 일이 아니라 출근을 힘들어 했고, 일이 아니라 조직 생활을 싫어했으며, 일이 아니라 일로 만나 내 영혼을 다치게 하는 사람이 미웠던 거였다. 1부 일하는 마음 꾸준히 여러 번 시도를 해서 성공 확률을 높이는 사람이며, 실패했을 때 오래 끌어안고 앓기보다 금방 털고 일어나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런 걸 회복 탄력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평생 일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있어 운을 좋게 만든다는 건, 무엇보다 내 인생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충실하게 대하는 일 아닐까? 누군가 곁에 있고 싶은 사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믿고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의 상태로 나를 유지하는 일 말이다. 기존 질서가 무너져 내리는 변화의 시기에 적응이라는 관점에서는 더 오래 산 사람 가운데 이상적인 롤모델을 찾아 닮고..

무한/독서 2022.06.28

[발췌]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섣불리 검증 대상으로 삼았다가 오히려 개소리를 홍보해주거나 부수적인 주장만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민입니다. 사실 검증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미디어 이론가 클레이 셔키는 2017년 7월에 '우리는 사실 검증 전문가를 문화 전쟁에 끌어들였다'라고 말했다. 사실 검증은 분명 유용하다. 문제는 진위를 폭로한 기사를 읽는 사람이 극히 적을 뿐 아니라 최초의 거짓 주장을 읽은 사람이 이를 읽는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또 폭로 기사는 정치적 갈등을 좁히기 힘들뿐더러 의도치 않게 갈등을 더욱 부추기기도 한다. 우리가 개소리에 제대로 맞서려면 적당히 대처하려는 자세를 버려야만 한다. 1부 누가 어떻게 우리를 조종하는가 정치는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공공정책을 논하는 순수하고 열띤 토론의 장이 되..

무한/독서 2022.06.15

[발췌] 생각한다는 착각​​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결코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행동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다른 누군가의 해석만큼이나 불완전하고 뒤죽박죽이며 반박의 여지가 있다. ​우리는 마치 자신이 외부 세계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는 지각 능력을 가진 것처럼 내면 세계의 내용을 파악하는 자기 성찰적 재능을 지닌 양 말한다. 하지만 자기 성찰은 지각이 아니라 고안의 과정으로, 우리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과 설명을 실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좋은 해석은 현재의 순간을 이해하게 해주는 해석이 아니라 과거의 행동과 말, 그리고 그 과거의 해석들을 현재의 순간과 연결해 주는 해석이다. 뇌는 숨겨진 깊이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과거와 연결함으로써 이 순간의 의식적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즉흥적인 엔진이다. ​뇌..

무한/독서 2022.06.15

[발췌] 마음에 없는 소리

나는 편집증 환자처럼 사람들에게서 나를 싫어하는 증거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나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피파고 싶었다. 결국 모든 것에 무감해지기로 했다. 표면적인 것만 보려고 하자. 함의가 있다고 넘겨짚지 말자. 함의를 찾으려 애쓰지도 말자. 무수한 뉘앙스, 분위기 뿐이었다. 일 프로가 없었다. 그건 내게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왜 이런 인간인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울었는데 다 울고 나니 번다한 생각들이 모두 다 용해된 느낌이었다. 그렇게까지 울기 위해서는 엄청난 열의와 압력이 필요했다. 때로 울음이 정화인 것은 어떤 살해에 성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앙금이 부정적인 걸 이르는 말이라면 긍정의 감정으로 가라앉는 것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생각해봤는데 누나, 긍정..

무한/독서 2022.05.22

[발췌] 빈틈의 온기

좋은 밤 보내라는 말은 흔한 인사 같지만 대부분의 흔한 인사가 그렇듯이 곱씹을수록 아름다운 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최소한의 평온함이라도 더해주고 싶은, 십시일반의 마음 같기도 하다. 잠의 입구에서 누리는 따뜻한 배웅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밤을 건너갈 힘을 얻는다. 너무 오래 멈춰 있으면 재기가 힘들어지는 건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사물에게도 교체와 회복의 시한이 있다니, 그건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고 어찌 보면 피곤한 일이다. 내 몸 하나뿐 아니라 소유한 물건들까지 다 돌아봐야 한다는 거니까. 어떤 사람들은 현장에서 무조건 빠른 복구보다는 정밀한 복구를 하기도 하는구나. 우연히 마주친 몸짓 하나에 큰 깨달음을 얻는 아침. 퇴근길엔 보통 두 종류의 동행이 붙는다. 잠 아니면..

무한/독서 2021.11.26

[발췌]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제2장 호모소셜, 호모포비아, 여성 혐오 여자의 가치가 남자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반면, 남자의 가치가 여자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일은 없다. 그런 점에서 이성애 질서는 남녀에게 비대칭적으로 작동한다. 제3장 성의 이중 기준과 여성의 분단 지배 - '성녀'와 '창녀'의 타자화 '남자가 남성으로서의 성적 주체화를 달성하기 위해, 여성 멸시를 아이덴티티의 핵심 깊은 곳에 위치시키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여성 혐오다'라고 논했다. 하지만 이런 여성 혐오에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바로 어머니이다. 자신을 낳은 여성을 대놓고 멸시하는 것은 곧 자신의 태생을 위협하는것이 된다. 사실 여성 혐오에는 여성 멸시뿐 아니라 여성 숭배라는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성의 이중 기준이란 남성 대상의 성도덕과 여성 대상의 성도..

무한/독서 2021.09.28

[발췌] 공부란 무엇인가

1부 공부의 길 - 지적 성숙의 과정 이 세상을 주제로 논술문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모순과 긴장과 혼란을 직시하되, 그에 대한 가능한 한, 모순 없는 문장을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논술문을 쓰기 위해서는 정교하게 정의한 개념과 분석적 논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외부 세계에 대한 충분한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완벽하게 흠결이 없는 혁명가, 오직 탐욕으로만 이루어진 자본가, 오직 순박함으로만 이루어진 농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신은 도덕족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던 혁명가, 너무 게을러서 탐욕스러워지는 데 실패한 자본가, 섣불리 귀농했다가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

무한/독서 2021.09.25

[발췌]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

1부 발견 발달단계 중 적절치 못한 단계에서 고용량 스트레스호르몬에 노출되었을 때 이후 건강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충분히 납득되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갑상샘이 갑상샘호르몬을 생산하지 않으면 신진대사 속도가 떨어지고 피부가 건조해지며 머리카락이 부석부석해진다.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소득이나 인종, 의료 접근성과 무관하게 그 자체만으로 미국(과 전 세계)의 가장 흔하고 심각한 질병 다수의 위험 요인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밝혀냈다.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에 노출된 사람이라 해도 신중을 기해 흡연이나 운동 부족 등 건강에 해로운 행동을 피하기만 한다면, 약 50퍼센트의 확률로 건강상의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2부 진단 우리 대부분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 가운데 많은 수..

무한/독서 2021.09.24

[발췌] Bad Feminist

서문 우리는 페미니즘에 비이성적으로 높은 기준을 세워 놓고 페미니즘에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 달라고, 혹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내려 달라고 조그로 있는 것만 같다. 페미니즘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치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행동하는 인간들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정죄한다. 그래서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단점과 모순으로 똘똘 뭉친 보통의 인간이니까. 나는 페미니스트의 역사에 정통하지도 않다. 내 관심사와 개인적인 성향과 의견은 주류 페미니즘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다.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완벽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

무한/독서 2021.09.19

[발췌]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 전하영 "스물한 살짜리를 유혹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에요." 문득 그가 중얼거렸다. 트위터에서 난리 폭풍이 일어난 것과 상관없이, 현실세계에서는 그보다 더 두드러지는 말들이 장 피에르를 호위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가 얼마나 훌륭하고 자상한 선생이었는지, 얼마나 투쟁적이고 명망 있는 인물이었는지, 이십대 초반의 장 피에르가 써서 전설로 회자되었다던 (혁명과 지성 운운하는) 선언서가 역사를 뚫고 나와 다시금 공유되었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 장 피에르에 대한 비판 뒤에 누군가의 '진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 모든 비난과 옹호, 논쟁과 음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안정적인 삶 속에 있었다. 그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무한/독서 2021.07.03